- 시진핑 죽마고우도 격노…한국기원 판정 논란 일파만파
- 출처:쿠키뉴스|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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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기사에게는 인품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기원 측은 처신을 더 잘했어야 한다. 커제 9단이 예선부터 결승까지 올라가는 동안 많은 노력을 했는데 한국은 이를 존중하지 않았다. 이번 LG배 결승전은 바둑계의 비극이다.” (녜웨이핑)
시진핑과 죽마고우로 잘 알려진 중국 바둑 최고 권위자 녜웨이핑 9단까지 나섰다. 녜웨이핑은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려 한국기원 측의 LG배 판정에 유감을 표하고, 이번 사태를 바둑계의 비극으로 규정했다.
25일 쿠키뉴스 취재 결과, LG배 결승전 이후 한국기원 바둑 심판의 판정 시비 논란이 중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던 중국의 ‘친한파’ 기사들까지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는 모양새다.
먼저, 중국 바둑계를 좌지우지하는 최고 권위자 녜웨이핑 9단이 이번 LG배 사태에서 커제 9단을 감싸면서 책임을 한국기원 측에 돌렸다. 이어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3회 우승을 차지한 중국 강호 딩하오 9단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변상일 9단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고, 중국 바둑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던 마샤오춘 9단은 “변상일 9단이 중국 바둑리그에 용병으로 올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커제 9단은 지난 20일~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신관 대회장에서 열린 제29회 LG배 결승3번기에서 변상일 9단에게 종합 스코어 1-2로 패했다. 20일 결승 1국을 승리하면서 변 9단 상대 7전 7승을 기록한 커제 9단은 우승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22일 세계대회 결승 역사상 초유의 ‘반칙패’에 이어 23일 최종 3국에서는 심판 판정 불복으로 인한 ‘몰수패’를 당하면서 메이저 세계대회 9회 우승 기회를 날렸다. 중국바둑협회는 즉각 공식 성명을 발표해 “LG배 결승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커제 9단은 소셜 미디어에 기존 8관왕이었던 개인 정보를 ‘9관왕’으로 업데이트 하는 등 논란은 점점 증폭되고 있다.
시진핑과 죽마고우로 잘 알려진 중국 바둑 레전드 녜웨이핑 9단이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려 이번 LG배가 바둑계의 비극이라고 질타했다. 녜웨이핑 SNS 갈무리
시진핑과 죽마고우로 잘 알려진 중국 바둑 레전드 녜웨이핑 9단이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려 이번 LG배가 바둑계의 비극이라고 질타했다. 녜웨이핑 SNS 갈무리
이에 중국바둑협회로부터 ‘기성(棋聖)’ 칭호를 받은 1952년생 원로 기사 녜웨이핑 9단이 전면에 등장했다. 한국이 바둑 변방국이던 시절, 세계대회가 없던 당시에는 중·일 슈퍼대항전이 가장 인기 있는 바둑 무대였다. 중국 녜웨이핑 9단은 1980년대를 풍미한 바둑 영웅으로, 당시 홀로 남아 단기필마로 일본 최고 기사들을 쓸어버리면서 ‘철의 수문장’으로 불렸다. 특히 1984년 초대 대회에선 일본의 후지사와 슈코 9단, 가토 마사오 9단,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등 최강의 기사 3명이 남은 상태에서 중국은 녜웨이핑 9단 혼자였는데, “우리가 진다면 삭발하겠다”고 도발하는 일본 기사를 모두 꺾고 중국에 우승컵을 안기면서 일약 국가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시진핑과 ‘57년 지기’ 친구인 녜웨이핑 9단은 시진핑 집권 이전에도 중국 내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1968년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시진핑이 중국에서 이른바 ‘시황제’ 시대를 연 이후부터는 녜웨이핑의 위세도 더욱 커졌다. 그의 말 한마디면 중국에선 안 되는 게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중국에서 열리는 바둑대회를 취재하러 갔던 한국 기자 중 한 명이 늦은 밤 급히 병원을 방문할 일이 생겼던 사례가 있었다. 당시 해당 지역은 중국의 지방 소도시라 병원이 없었고, 늦은 밤이라 이동 수단도 마땅치 않았는데 한국기원 관계자가 녜웨이핑 9단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녜웨이핑 9단은 즉시 주변을 수소문해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한국 기자는 중국 병원에서 초기 진료를 잘 받은 이후 귀국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었다.
이같이 그동안 한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중국 바둑의 태산거두 녜웨이핑 9단이 등을 돌리자, 중국 바둑계에선 대국 당사자인 변상일 9단은 물론 한국기원 소속 손근기 심판에게도 화살이 향하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 또한 “한국에서는 바둑보다 사석(따낸 돌) 관리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비아냥거리거나 “한국은 대통령도 청와대에 없으면서 사석은 반드시 사석통에 있어야 한다니 우습다”고 조롱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녜웨이핑 9단의 제자이자 중국 바둑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던 마샤오춘 9단과, 몽백합배 세계바둑대회를 후원하고 있는 중국 부호(富豪) 니장건 몽백합그룹 회장까지 변상일 9단 비난에 가세했다.
마샤오춘 9단은 “한국은 정말 뻔뻔하다”고 질타하면서 “내가 커제 9단이었다면, 2국 반칙패 판정 이후 3국을 아예 두지 않고 한국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 불참한다고 선언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변상일 9단을 향해 “이런 사람이 세계대회 우승자라니 부끄럽다”고 날을 세우면서 “이런 기품(氣品)으로 중국 갑조리그에 올 수 있겠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니장건 몽백합그룹 회장은 ‘몽백합배’ 세계바둑대회는 물론,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의 ‘10번기’를 직접 기획하고 후원하면서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바둑계 대표적인 후원자다. 니장건 회장은 소셜 미디어에 아예 영상까지 올려 “(한국기원의 사석 관리 규정에 대해) 이런 말도 안 되는 룰이 어딨냐”고 질타하면서 “규칙보다 위에 있는 것이 바로 바둑의 정신”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다음 몽백합배 대회에 변상일 9단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출전 금지를 종용했다.
바둑 관계자는 “한국 프로기사들이 중국 바둑리그(갑조리그, 을조리그, 여자리그 등)에 용병으로 출전하면서 매년 약 15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면서 “마샤오춘 전 중국 국가대표 감독의 주장대로 한국 선수들이 중국리그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한국 기사들의 막대한 손실로 직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 여자 랭킹 7위에 올라 있는 조혜연 9단은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려 “따낸 사석이 30개가 되었든 40개 이상이든 돌통에 사석을 못 쌓고 흘러내리는 순간 벌점 2집을 당하는 거냐”면서 “개정된 룰이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사석돌통법 등 개정 한국룰을 해외 선수 및 외국 협회에 철저히 사전 고지했는지 여부”에 대해 언급한 조 9단은 “심판이 선수의 실수를 인지했어도 선수 본인의 이의제기 없이 착점이 진행되면 정상적인 진행 상태, 즉 문제 없는 것으로 대국 상황을 넘기던 것이, 언제든 심판이 대국 도중에 아무 때나 즉각 개입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뀐 것이 맞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조 9단은 “한국기원 심판위원회의 룰 수호 의지가 강력한데, 대국 당사자인 기사들에게는 룰이 바뀌는 것을 철저하게 알려주고 교육하고 인식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생략된 상태로 시합에 급박하게 적용됐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룰 규정 개정에 있어서는 하나 하나 최소한 프로기사총회 차원의 인준을 받았어야 하지 않냐”고 한국기원 측의 책임을 물었다. 조 9단은 “바뀐 한국의 바둑룰은 종전의 유연한 규칙에 비해 파격적이고 급진적인 만큼, 심판위원회가 바꾸고 프로기사에게 공지 몇 줄로 강요하기보다는 하나 하나 바뀌는 부분을 논의하고 유예 및 적응기간을 둬 타당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해보인다”면서 “앞으로도 한국 바둑룰이 갑자기 이것저것 바뀌어갈 듯해 우려스러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반면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바둑학과의 유승엽 교수(학과장)는 “근본적으로 이번 LG배 사태 원인은 커제의 반칙”이라며 “물론 그 배경은 바둑 규칙이 최근에 바뀌었기 때문에 잘못된 습관을 갖고 있던 중국 선수들이 그 습관을 빨리 고치지 못했다는 것인데, 어쨌든 규칙은 규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 교수는 “커제는 한국 대회에 참가해서 규칙을 어기고, 심판이 지적을 하자 삿대질까지 하며 반발했다”면서 “세상 어느 스포츠에서 심판이 반칙한 선수에게 경고를 줄 때 선수가 심판에게 삿대질을 하며 반발을 하냐”고 커제 9단의 행동을 비판했다.
유 교수는 “커제가 중국 일인자이든 스타이든 규칙을 어긴 것은 잘못한 것”이라며 “규칙이 이상하다면 의견을 제시해 향후 다시 수정하면 되지만, 그때까지는 지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대만 바둑팬의 글을 소개하면서 “한국은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구속시키는 나라인데, 중국은 주석이 어떤 잘못을 해도 다 통과되는 나라다. 그게 이런 사태를 야기시킨 것이다. 규칙은 준수되어야 한다”고 글을 갈무리했다.
한편 쿠키뉴스 취재 결과, 한국기원은 당초 LG배 시상식이 열리기 전인 24일 오전에 룰 관련 위원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설 연휴 이후로 연기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사석 관리 규정을 현실에 맞게 다시 개정할 것 같다”고 내다봤는데, 만약 이번에 룰 개정이 진행된다면 지난해 11월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룰이 바뀌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룰까지 다시 개정한다면 한국기원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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